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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키소스 – SNS시대의 자기애

    거울 대신 화면을 바라보는 시대


    거울 대신 화면을 바라보는 시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합니다. 내가 올린 사진에 몇 개의 ‘좋아요’가 붙었는지, 누가 내 이야기를 보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우리는 이전 어느 시대보다 자주 자신을 보여주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확인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약 2천 년 전의 신화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 결국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나르키소스(Narcissus)입니다.

    나르키소스 이야기는 흔히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사람의 비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자기애 이상의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나르키소스는 왜 물에 비친 자신에게 빠졌을까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나르키소스는 빼어난 외모를 가진 젊은이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마음을 주지만 그는 그 사랑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를 사랑했던 존재 가운데 하나가 에코(Echo)였습니다.

    에코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마지막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나르키소스를 사랑하지만 거절당하고, 결국 슬픔 속에서 쇠약해집니다.

    나르키소스의 냉정함에 대한 벌로 그는 물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손을 뻗으면 물결이 일고 모습은 흐려집니다. 가까이 다가가도 만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이미지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마침내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대상이 자기 자신임을 깨닫지만 이미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를 통해 널리 전해졌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르키소스가 단순히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만은 아닙니다.

    그가 사랑한 것은 살아 있는 자기 자신이라기보다 물 위에 나타난 자신의 이미지였습니다.

    SNS는 현대의 수면일까

    오늘날 우리는 호수 대신 스마트폰 화면에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사진을 찍고, 가장 좋은 장면을 고르고, 필요하면 보정하고, 문장을 다듬은 뒤 세상에 공개합니다.

    그리고 반응을 기다립니다.

    좋아요 수, 조회 수, 댓글, 팔로워 숫자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숫자로 보여줍니다.

    물론 SNS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SNS는 멀리 있는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게 해주고, 자신의 작품이나 생각을 세상과 나누게 하며, 과거에는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들을 연결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화면 속의 내가 현실의 나보다 중요해지기 시작할 때 생깁니다.

    나르키소스가 물속의 이미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는 때때로 실제 경험보다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에 사진을 찍고, 여행지를 바라보기 전에 카메라를 켜고, 어떤 경험을 하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게시할지 생각합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삶을 전시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애와 자존감은 같은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건강한 자존감은 오히려 필요합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함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평가가 좋지 않더라도 자신의 가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감각이 자존감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반면 외부의 반응을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게시물의 반응이 좋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대했던 반응이 없으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순간 화면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거울이 됩니다.

    나르키소스 신화가 지금도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화는 우리에게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사랑하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에코의 이야기도 함께 보아야 하는 이유

    나르키소스 이야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에코입니다.

    에코는 자신의 목소리로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되풀이합니다.

    이 모습을 오늘날의 SNS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SNS에서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말과 유행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유행하는 표현을 따라 하고, 비슷한 사진을 찍고, 인기 있는 생각을 공유합니다.

    그래서 나르키소스와 에코는 서로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이지만 현대적으로 읽으면 묘한 한 쌍이 됩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미지와 반복.

    어쩌면 두 가지 모두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화면 밖의 나를 잃지 않는 방법

    SNS를 떠나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화면 속의 나와 실제의 나 사이에 거리를 둘 수 있는가입니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은 여행도 가치가 있습니다. 아무도 ‘좋아요’를 누르지 않은 생각도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은 하루 역시 충분히 좋은 하루가 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아무도 이것을 보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이것을 하고 싶은가?

    대답이 ‘그렇다’라면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관계없이 자신의 욕구와 가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된 신화가 지금도 필요한 이유

    신화는 오래된 이야기지만 인간의 욕망은 놀랄 만큼 비슷한 모습을 반복합니다.

    나르키소스 시대에는 물이 거울이었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스마트폰 화면이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기술은 달라졌지만 인간에게는 여전히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는 SNS가 존재하는 시대에 오히려 새롭게 읽힙니다.

    문제는 거울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거울 속 모습만 바라보다가 거울 밖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잊는 것, 그것이 나르키소스의 오래된 이야기가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경고일지도 모릅니다.